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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days)

시작한다면 완성된다. (미완)

by Minsung Kyung 2021. 2. 6.

'은하철도 999'란 만화영화에서 999의 뜻은 무엇인가? 어디서 들었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999란 미완을 의미한다고 들었다. 완벽히 마무리 되지 않은 미완, 그래서 은하철도 999.

은하철도 999에서 주인공 철이는 인간의 몸 대신 완벽한 기계의 몸을 얻기 위해 우주를 여행한다. 결론을 말하자면 철이는 인간의 몸을 유지하게 된다. 만약 철이가 의도한 바를 이뤘다면 이 만화의 제목은 '은하철도 1000'이 되었을 것이다.

10개의 작품(?)을 완성하는데 약 1년 반가량의 시간이 걸린 듯하다. 앞선 몇 개의 글에서 말한 적 있는데 유화는 그리는 시간도 시간이지만 기다리는 시간, 즉 기름이 충분히 증발할 수 있도록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많은 시간을 들여야 했다. 일본인 소설가 무라야마겐지는 '아직 오지 않은 소설가에게'라는 책에서 습작 중인 이들을 향해 어차피 별 쓸데없는 것으로 시간을 보낼 것이었으니 글을 쓰는 시간이 아까울 것은 없다고 말했다. 그림을 그리지 않는 시간에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했을까? 아마도 시간을 죽이는 것으로 채웠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시간은 죽지 않고 무언가를 남겨두었다.

 

몇몇 그림에는 도와주신 미술 선생님의 손길이 진하게 남아있다. 그러나 그리겠다는 의지와 실행은 오롯이 내가 불러일으킨 것이었다. 두시간 남짓 여덟명이나 되는 수강생이 그림을 그리다 보니 선생님의 온전한 도움을 기대할 수 없었는데 이것이 오히려 뿌듯함의 근원이 되었다.

 

그런데 9개의 그림을 완성하고 나자 스멀스멀 게으름이 고개를 들었다. 더불어 그림에 대한 흥미가 급격히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이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아야 한단계 높이 도약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평생의 취미로 평생의 안식처로 남을 수 있을 것을 알지만 이제는 마침표를 찍고 싶어졌다. 그런 생각이 들자 그림을 9와 같은 미완의 영역이 아닌 완결의 영역에 옮겨 두고 싶어졌다. 그래야 아쉬움이 쌓이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림의 수는 9개가 아닌 10개가 되었다. 그림 10.

 

"그림에 사람의 성격이 드러나는 것 같아요." 선생님은 "물론이죠."라고 답했다.

 

단 하나의 피사체, 뚜렷하게 집중되는 단 하나의 존재를 보는 것이 편안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나는 생각이 많은 사람이다. 그것도 정도 되지 않은 번잡스러운 생각들, 강풍에 흩날리는 나무에 매달린 잎사귀마냥 생각은 제각각 흩날리곤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림을 그리는 시간 동안에는 바람이 불지 않았다. 재미있고도 유익한 시간이자 경험이었다. 소중한 이에게도 권해주고 싶은 것, 그림 그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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