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언젠가 이 글을 다시 읽게 된다면 이글은 촌스러운 글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것은 마치 컴퓨터가 자연스러운 시대의 사람들이 컴퓨터가 몰고 올 시대의 변화를 우려하는 글을 보는 것과 같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세대에게 컴퓨터의 등장은 하나의 충격이었을 것이고 컴퓨터가 자연스러운 세대에게 이전 세대가 가진 컴퓨터에 대한 우려는 한낱 기우에 불과한 것이지 않았을까.
최근 가족들과 외식을 했다. 우리 가족이 정한 곳은 매운탕 가게로 딱히 고급스럽다거나 비싼 곳은 아니었다. 종업원에게 선택한 메뉴를 주문하고 나서 이런저런 얘기로 잠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중에 우리 가족 모두 아래 광경을 보고 놀랐다.
어떤 이들에게 서빙 로봇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인간을 대체하고 있는 기계, 커피를 내리는 로봇이나 음식을 만드는 로봇을 티브이를 통해 본적이 있다. 그리고 머리로도 기계가 인간을 대체할 것이라는 예측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다만 그것이 실생활에서 느껴질 만큼 가깝게 다가온 것에 적잖이 당황스러움을 느낀 것이다.
이 식당의 홀에는 한명의 직원이 상주하고 있었다. 그분은 팔이 없는 로봇을 대신해서 음식을 우리 테이블로 옮겨주었는데 그분에 따르면 기존 홀에서 근무하던 직원 중 자신만이 남았다고 했다. 다행스럽게도 로봇은 아직 팔을 갖추고 있지 않았기에 한명의 직원은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언젠가 이 로봇이 팔을 갖추게 될 것임을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이미 개발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무인 샌드위치 가게를 시작으로 무인 편의점, 무인 간장게장 가게, 무인 독서실 등이 집 근처에 들어섰다. 마트에는 무인계산대가 사람으로 운영되는 계산대의 개수를 넘어서기 시작했고 동네에 위치한 한 생활용품 판매점 역시 무인 계산대의 비중이 사람으로 운영되는 계산대의 숫자를 앞질렀다. 무인계산이 어려운 이들을 위해 도우미 한명이 배치되어 무인계산대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돕고 있다. 사람들은 점점 무인 계산대에 익숙해 질 것이다. 그리고 언젠간 사람을 통해서 물건값을 지불하는 것이 어색한 순간이 올 것이다. 비단 계산뿐만이 아니다. 일본의 유니클로에서는 고객이 고른 옷을 포장한 후 봉투에 담아주는 것까지 자동화 되어 있다고 한다. 사람 없이 로봇으로만 운영되는 식당 역시 이미 운영 중이다. 생산의 영역을 넘어서 서비스업종까지 전방위적으로 인간이 밀려나고 있다.
로봇은 쉬지도 먹지도 않는다. 그들은 끊임없이 일하면서도 보상을 바라지 않는다. 그들은 업그레이드를 거칠수록 점점 더 많이 생산해낼 것이다. 그리고 종국에는 인간이 결단코 범접할 수 없는 효율성을 보일 것이다.
그들은 효율적이다. 문제는 거기에 있다. 그들은 점점 더 많은 제품을 생산하고 더 많은 서비스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로봇은 소비하지 않는다. 소비는 인간의 영역이다. 그러나 인간이 노동의 영역에서 로봇에게 밀려나게 되면 넘쳐나는 물건들과 서비스를 구매할 능력은 무엇을 통해 획득할 수 있을까?
결국 로봇의 버전이 높아질수록 인간의 소비를 도울 수 있는 수단 역시 더 많이 더 자주 제공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지금까지 쌓아 올린 자본주의 시스템이 멈춰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노동소득의 사슬이 끊기더라도 이 사회 시스템을 유지하려면 인간으로서 살아 숨 쉬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소비의 수단을 받게 될 것이다. 어떤 수단이 될지는 모르지만 소비해야 하는 인간의 시대가 도래할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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