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들은 커피숍을 '단기 임대업'이라고 정의한다. 그들에게 커피숍은 음료를 파는 곳이 아니라 공간을 시간 혹은 분 단위로 쪼개어 판매하는 곳이다. 홀로 있고 싶을 때는 귀에 이어폰을 끼고 사람이 그리우면 고개를 들어 사람을 구경하다 다시금 이어폰을 귀에 가져가 혼자가 될 수 있는 공간인 것이다. 더불어 공적이며 사적인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사교의 장이기도 하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이런 이야기에 크게 공감할 수 밖에 없었다. 커피가 그리운 것이 아니라 공간이 그리웠다.
다행히 얼마 전 커피숍 영업제한조치가 완화되면서 커피숍내에서 머무는 것이 허용되었다. 읽히지 않는 책이 한 권 있어 그 책을 집어 들고서 집 근처 커피숍으로 향했다.
이어폰을 챙기지 않은 탓에 인근 테이블에 모인 사람들의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그중에서 내 주의를 끄는 대화를 나누는 테이블이 있어 그들을 잠시 관찰했다. 그들은 중고등학생의 자녀가 있을 법한 나이대의 남녀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들은 한창 온라인 게임의 아이템과 추후 함께 진행 할 게임 내 이벤트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대화의 내용으로 보아 함께 온라인 게임을 즐기는 무리인듯 보였다. 게임을 즐기는 것이 딱히 이목을 끌 일이 아니다. 다만 내가 주의를 기울이게 된 이유는 그들이 중년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내가 가진 중년이란 스테레오타입에서 한참 벗어나 있었다.
비슷한 예로 몇 년 전 늦은 밤 술이 거나하게 취한 중년 남성 무리가 카페로 들어와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광경을 보았다. 그들은 2차로 술을 찾는 것이 아니라 커피를 마시며 그날의 만남을 마무리 하고 있었다. 술 취한 아저씨라면 으레 2차 3차로 술을 마시며 고주망태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내가 가진 술 취한 아저씨 무리의 스테레오타입이었다. 그러나 그들 역시 내가 가진 스테레오타입에서 벗어나 있었다.
DJ 배철수씨는 계속 새로운 팝을 들으며 그것을 이용해 자식들과 소통한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경험하기보다는 과거에 들었던 것을 다시 듣는다. 그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연인을 찾기보다 과거 연인을 다시 찾는 것이다.
그간 쌓아온 경험을 통해 쌓아온 스테레오타입을 포기하고 새로운 것을 인정하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것, 기존의 것에서 벗어난 것에 저항하게 된다. 그러나 저항은 부질없다. 결국 새로운 것은 받아들일 만한 것이 된 후 기존의 것이 되어버린다. 그 흐름은 결코 멈추는 법이 없다. 오직 사람만이 멈추고는 늙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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