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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직할 만한 책

독서토론 논제_3/6 [이것이 인간인가(프리모 레비, 돌베개)]

by Minsung Kyung 2020. 10. 27.

대학 시절 '영성'이라는 과목이 있었다. 학교의 특성상 필수로 이수해야 하는 종교 관련 수업이었으나 그다지 종교적인 색채를 띄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느 날 교수님은 뜬금없이 야외 수업을 진행했다. 학생들이 2인 1조로 짝을 이루어 한명은 눈을 감고 다른 한명은 눈 감은 이의 손을 잡아 정해진 목적지 까지 함께 이동하는 것이었다.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는 한 걸음을 떼는 것조차 두려웠으며 짧은 거리조차 상당히 길게 느껴졌다.

 

우리는 생소한 것을 꺼린다. 이는 비단 어떤 것의 문제뿐만 아니라 사람에게까지 적용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생소한 것들, 다양한 사람들을  접해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일부 교육 현장에서는 각종 활동(기부, 문화생활, 농사, 스포츠, 직업 등)을 강제로 접하게 한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삶의 부피를 늘려갈 수 있기에 이런 강제성조차 일부분 긍정적으로 작용한다고 본다. 비슷한 예로 공무원을 뽑으면서 취약 계층을 선발 하는 것 역시 공동체 내 이해의 폭을 늘리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물론 어떤 체험은 절대 할 수 없는 것이거나 해서는 안되는 것이 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답을 가지고 있다. 바로 책이다. 여기 아우슈비츠 생존자의 증언이 있다.

 

참고로 그의 마지막 선택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나 나는 그의 마지막 선택을 긍정해 주고 싶다.

자유 논제

 1. 어느 날 존더코만도에 소속되어 시체처리 일을 맡은 유대인 수감자들에 의해 화장터 소각장 하나가 폭파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사건에 가담한 한 유대인은 저자를 포함한 다른 수감자들 앞에서 교수형에 처하게 됩니다. 그러나 수감자들은 우선 배고픔이라는 일상의 분노를 해결한 후에야 일말의 수치심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수치심은 어떠한 행동도 끌어내지 못했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저항하고 행동하는 사람들과 무심히 바라보는 사람들의 차이가 무엇에서 기인한다고 보십니까?

알베르토와 나는 다시 막사로 들어왔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우리를 이토록 망가뜨린 이런 상황에 굴복하지 않은 것을 보면 그 남자는 강인한 남자였던 게 틀림없다. 우리들과는 다른 금속으로 만들어진 게 틀림없다. (p. 229)

 2. 수용소는 수감자들을 길들이기 위해 욕설, 구타, 이유 없는 규율을 지키게 만듭니다. 그중에서 저자는 음악(행진곡)이 수감자들의 생각을 죽이고 고통을 완화하는 최면의 도구로 이용되었다고 말합니다. 현대사회에서도 우리는 미디어 그리고 각 개인이 속한 조직을 통해 의식과 행동을 통제 받습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의 의식과 행동을 규제하는 것들에는 무엇이 있는지 함께 얘기해 봅시다.

그 음악이 울릴 때 우리는 밖에, 안개 속에 있는 동료들이 로봇처럼 행진을 시작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의 영혼은 죽어 있다. 음악은 바람이 낙엽을 날리듯 그들을 떠밀며 그들에게서 의지를 몰아낸다. 의지 같은 것은 이제 없다. 북소리의 박자가 걸음이 되고, 반사작용으로 지친 근육을 잡아 당긴다. 독일인들은 이점에서 성공했다. 1만명의 동료들은 단 하나의 회색 기계들이다. 그들은 정확할 정도로 결연하다. 생각하지도 원하지도 않는다. 그저 걸을 뿐이다. (p. 74)

3. 저자는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통해 악의 이미지를 아래 발췌와 같이 형상화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생각하는 악의 이미지를 형상화 해 봅시다.

우리 시대의 모든 악을 하나의 이미지로 형상화 할 수 있다면, 나는 내게 친근한 이 이미지를 고를 것이다.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구부정하게 구부린, 뼈만 앙상한 남자의 이미지이다. 그의 얼굴과 눈에서는 생각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p.136)

 

찬반 논제

1. 저자는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태도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고 말합니다. 이는 개개인의 성격이나 경험에 의해 좌우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크던 작던 어떠한 고난을 겪어 냈다고 가정해 봅시다. 여러분께서는 대체로 어느 방식을 더 선호하십니까?

슬픈 추억을 되살리는 힘을 지닌 수용소 앞에서 살아남은 우리들은 서로 다른 태도를 보였지만 대개 두 부류로 나뉘었다.

첫째 부류는 이곳으로 돌아오기를, 혹은 이런 주제로 이야기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 이다. ……(중략) 그들에게 기억은 낯선 어떤 것, 그들의 삶에 난입한 고통스러운 물체였다.

둘째 부류는 반대로 ‘정치적’ 이었던, 혹은 어찌되었든 정치적 경험이 있거나 종교적 신념 또는 강한 도덕성을 소유한 포로들이다. 이 귀환자들에게는 기억하는 것이 의무다. 그들은 잊고 싶어하지 않는다. (p. 284)

- 첫째 부류의 방식

- 둘째 부류의 방식

 

2. 저자는 집단학살에 침묵한 독일인들에 대해 고의적인 태만함 즉, 알려 하지 않았고 알리지 않은 것을 근거로 그들이 유죄라 말합니다. 반면 수용소 내 수감자들이 반란에 소극적이었던 이유에 대해서는 폭력과 억압 그리고 일반인이 가지기 힘든 저항의식을 언급합니다. 나아가 저자는 조직된 저항의식은 소수의 엘리트들에게 서나 볼 수 있었던 시기였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얼핏 상반된 주장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일반 독일인들이 유죄라는 저자의 주장에 공감하십니까?

아는 것, 그리고 알리는 것은 나치즘에서 떨어져 나오는 방법(결국 그리 오래지 않아 위험에 처할 수밖에 없는 방법)이었다. 나는 독일 국민이 전체적으로 이런 방법에 의지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바로 이러한 고의적인 태만함 때문에 그들이 유죄라고 생각한다. (p. 276)

결론적으로 저항이 부족했다고 포로들을 비난하는 것은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실수다. 이것은 오늘날 어느 정도 일반적인 자산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엘리트들만 가지고 있던 정치의식을 포로들에게 요구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p. 282)

- 공감한다.

- 공감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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