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무슨 문제가 있든 부모를 탓하지는 마라.
살면서 단 한 번도 담배를 피운 적이 없었다.
양육가설의 저자 주디스 리치 해리스에 의하면 내가 담배를 피우지 않게 된 이유는 내가 속한 또래집단에 담배를 피우는 이들이 주류를 차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속한 또래집단에서 담배를 피우는 이들이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면 아마도 나는 그들을 선망하고 닮고 싶은 마음에 담배를 피웠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흔히 청소년들의 흡연이 어른을 흉내 내는 것이라 여긴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청소년들은 결코 어른을 닮아가길 원하지 않는다. 반대로 아이들은 어른과 구별되기를 원한다. 아이들은 어른을 모방하고자 흡연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이 속한 또래집단에서 보다 주목을 끌고 싶은 마음에 튀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행위를 통해서 집단 내에서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싶어 한다. 집단 내에서 높은 위치를 차지하는 것 그것은 집단 내에서 인정받는다는 것이고 집단 내에서 인정받는 아이의 자존감은 높아진다.
여기까지는 충분히 이해 할 수 있다. 청소년 시절 또래집단의 중요성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성인들도 자신들이 속한 집단 속에서 영향을 주고받으며 인정을 갈구한다. 저자는 좀 더 충격적인 주장을 던진다. 그녀에 따르면 아이들은 부모의 양육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아이들이 부모와 유사한 행동패턴을 보이는 것은 부모로부터 전해진 유전자의 영향이며 유전을 제외한 사회화의 과정의 대부분은 또래집단을 통해서 이루어 진다. 극단적인 예 일수 있지만 또래집단 없이 부모와 지낸 아이와 부모 없이 또래집단과 지낸 아이를 비교하면 전자는 정신적 문제를 앓을 수 있지만 후자는 보통의 아이들과 다를 바 없이 성장하게 된다. 그만큼 또래 집단은 아이들의 사회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데 그 영향은 부모가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을 압도한다. 만약 부모와 또래집단의 영향력이 서로 부딪힌다면 아이들은 당연하게 또래집단의 것을 수용하게 된다.
우리는 부모의 사랑에 대해 과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 부모로부터 사랑받고 자란 아이들과 그렇지 못한 아이들에 대한 신념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에 대해서 단호하게 말한다. 아이들의 성격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아이들이 속한 또래집단에서 아이가 차지한 위치라는 것이다. 부모가 사랑을 주었던 주지 않았던지 그것은 아이가 형성하게 될 성격에 그다지 영향이 없다는 것이다. 자신이 속한 또래집단에 수용되고 인정받은 아이는 긍정적인 성격을 형성하게 되고 집단에 배척받거나 낮은 지위에 위치한 아이는 부정적인 성격을 형성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키가 작고 왜소한 남자아이들이 다소 소심한 성격을 형성하는데 이것은 그들이 청소년 시절 집단 내에서 낮은 서열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물론 외모와 같은 것만으로 지위가 정해지지는 않는다. 또래집단 내에서 맡게 된 어떤 역할을 통해 집단의 인정을 획득한다면 아이의 자존감은 높아지게 되고 아이는 긍정적인 성격을 형성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자신의 성격이나 자존감과 같은 것들을 생각할 때 부모를 배경에 가져다 놓는 것일까? 저자에 따르면 그것은 우리와 끊이지 않고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부모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맺는 외적인 관계들은 모였다 흩어졌다 끊임없이 변한다. 그러나 부모와의 관계는 영원하다.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은 부모이고 그들은 손쉽게 심판대에 세워진다. 물론 그렇다고 부모가 전혀 책임이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들이 양육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질적인 것들을 제공했다면 그 외적인 것들에서 그들에게 죄를 물을 수는 없다.
아이가 부모가 아닌 또래집단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유전자는 이미 전달 된 것이기에 거론할 수 없다. 부모가 해 줄 수 있는 것, 그것은 아이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또래집단이 있는 곳에 아이를 위치시키는 것이다.
나는 학군이나 끼리끼리 문화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학군에 따라 움직이는 집값과 같은 기사를 볼 때마다 코웃음을 치곤 했다. 그러나 어른들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을 뿐 본능적으로 또래집단의 중요성이나 영향력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의 글 중에서 '지역이 범죄자를 만든다.'라는 문장이 있다. 내가 속한 지역에서 구성된 무리를 닮아간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될듯하다. 인간의 의지력은 그다지 믿을 것이 못되며 인간은 환경에 쉽게 물든다. 환경을 또래집단으로 바꾸어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아래 사진은 EBS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으로 모양이 다양한 사탕 중에서 원하는 것을 고르는 실험이다. 1차 선택에서 아이들은 각자가 원하는 모양의 사탕을 골랐다. 잠시 후 제작진은 아이들에게 친구들이 고른 사탕이 무엇인지 알려주었다. 그리고 다시 아이들에게 원하는 사탕을 골라보라고 시켰다. 그러자 아이들은 자신의 선택을 버리고 친구들의 선택을 그대로 따랐다.
물론 저자는 가장 강력한 것은 유전의 힘이라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머리 좋은 아이로 자라는 것은 어린 시절 책을 읽어 준 부모의 행동 때문이 아니라 이미 머리 좋은 부모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러나 유전을 제외하고 아이의 사회화에 가장 영향을 끼치는 요소는 부모의 양육이 아니라 또래집단을 닮아가려는 아이의 본능이라는 것이다.
당신의 성격 혹은 자존감과 같은 것들은 부모가 아니라 또래집단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러니 '당신에게 무슨 문제가 있든 부모를 탓하지는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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