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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days)

마음을 읽다_Day 10(life style)

by Minsung Kyung 2020. 12. 17.

지금 당장 어떤 음식이라도 주문할 수 있다면... 나는 장어덮밥.

 

몇 년 전 여름휴가를 맞아 일본에 가기로 했었다. 가깝기도 하고 비용 또한 저렴했기 때문이었다. 거창한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적당한 가격의 호텔에서 쉬며 동네 구경이나 하자는 생각이었다. 다만 꼭 하고 싶었던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장어덮밥을 먹는 것이었다. 정말 맛있는 장어덮밥을 한번은 싶었다. 오사카에는 미슐랭 별을 획득한 장어덮밥집이 있었기에 겸사겸사 목적지는 오사카가 되었다.

늦게 도착하면 줄을 서야 한다는 리뷰 탓에 나는 오사카에 도착한 다음날 이른 아침 그 가게에 도착했다. 가게 마당 마루에 걸터앉아 홀로 기다렸다. 이윽고 가게 사장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가게 마당을 통해 뒤편으로 가다 나를 발견하고는 큰 소리로 말을 걸었다. "오하이요" 당황한 나의 대답은, "아리가토". 그렇게 아저씨는 가게 뒤편으로 들어갔고 나는 책을 읽으며 한 시간 가량을 더 기다렸다. 그 와중에 손님들은 내 뒤로 줄을 섰다. 이윽고 가게 문이 열리고 나는 첫 손님으로 가게에 입장할 수 있었다. 역시나 장어덮밥은 역시나 매우 훌륭했다. 다만 으레 그렇듯 가격은 훌륭하지 못했다.

 

꼭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을 했으니 이제 여행은 느긋함과 여유로 점철되어야만 했다. 하지만 이후 여행은 오히려 고행이 되었다. 느긋함과 여유로 채웠어야 할 시간이 불안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새로운 목적지들을 찾고는 그 곳을 향해 걷고 또 걸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딘가를 향해 걸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또한 '반드시' 장어덮밥을 먹어야 할 이유 역시도 없었다. 아마도 나는 어떤 의미 혹은 목표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함에 있어서 그냥 한다는 것에 거부감이 들었던 것은 아닐까. 지금도 아무런 목적 없는 외출, 아무 목적 없는 만남 같은 것이 그다지 편하지 않다. 나는 무리해서라도 납득할만한 행동의 동기를 찾아내거나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생활양식'(life style)을 지니고 있다.

심리학자 아들러는 개인이 지니는 독특한 삶의 방식을 '생활양식'이라고 지칭했다. 개인의 최종목표를 추구하기 위한 개인만의 신념, 사고, 감정, 행동을 의미하며 어린 시절 가족경험에 의해 발달한다고 한다.

 

쓸모 있는 사고와 행동으로 점철된 가족, 특히나 어머니. 물론 그 덕택에 적당한 생활을 영위하지만 못내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좀 덜 고민하고 살았으면 좀 덜 고려하고 살았으면 나는 좀 더 말랑말랑한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 경직된 사고와 행동이 아닌, 다시 말해 유연한 '생활양식'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면...

 

생활양식 속 '당위'의 무게가 좀 더 가벼워진다면 여행은 나아가 삶은 좀 더 느긋하고 가벼워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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