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충무김밥과 나의 애호박볶음>
움직여야 한다는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주차비는 항상 피하고 싶은 비용이다. 그래서 차를 목적지와는 먼 공원에 주차해놓고 걸어서 목적지로 향했다. 몸과 마음이 가벼워졌고 이런 상태라면 달려도 될만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이라는 영화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을 때 수상 직후 인터뷰에서 그는 충무김밥이 먹고 싶다고 말했다. 이를 본 음식평론가 황교익씨는 봉준호 감독이 충무김밥을 찾는 행위는 그 자신을 위로하고자 하는, 큰일을 이룬 후 자신을 위로하고자 하는 마음의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내가 나를 위로할 때 많이 찾았던 음식은 단연코 치킨이었다. 회사에서 보낸 하루가 길게 느껴지는 날이면 치킨을 찾았다. 그녀와의 데이트를 마치고 나서 집으로 향하는 길에 샀던 치킨 한마디 역시 비슷한 표현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나를 위로하는 의식의 하나로 치킨을 먹었다. 그다지 노력이 들지 않는 본능적인 행위, 가장 대표적으로 먹는 행위를 통해서 나를 위로하고자 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치킨을 먹는 것으로 어떤 감정적 위안을 얻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단지 비교적 값싸고 손쉽게 접할 수 있기에 높은 빈도로 선택했을 뿐이다. 오히려 굳이 이걸 왜 먹었을까 하고 후회되는 기억이 많았다.
좋아하는 먹거리를 몇 가지 떠올려 본다. 착즙 오렌지 주스, 소금을 뿌려 직화로 구운 옥수수같이 소소한 것들이 떠오른다. 한 끼라고 불릴만한 것 중에서는 없을까 생각하지만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단출한 음식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맥락이 없거나 일체감 없는 곁가지 음식이 함께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단무지, 마카로니, 치킨무 그리고 김치 같은 것들이 음식에 함께 나오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 그 외에도 남길 수 밖에 없는 양의 반찬이나 번잡스러운 식사 과정을 수반하는 음식은 내 것이 아니다.
생각을 거듭하다 '애호박볶음'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 나는 따뜻한 흰쌀밥에 고춧가루를 쓰지 않은 애호박볶음을 비벼 먹곤 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맛있게 먹었다는 감정이 어렴풋이 남아있다. 지금도 애호박볶음 한가지 반찬만으로 충분히 만족스러운 식사를 할 수 있다. 소박하지만 애호박볶음은 흰쌀밥에 비벼놓으면 부드러운 식감, 짭조름함 그리고 들기름향이 한데 어우러져 맛있는 한 끼로 완성된다. 더해서 어린 시절로부터 전해진 좋은 감정이 맛을 거든다.
내가 나를 위로해야 하는 상황이 왔을 때 부드럽고 짭조름하고 들기름향 가득한 애호박볶음이 찾고 싶어질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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