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같은 세상을 못살아서 후회가 돼요. 남들처럼 어디 구경도 못 해보고 가보지도 못하고 그냥저냥 일해서 먹고만 살았더니 후회가 돼요. 어중간하게 태어나고 싶소. 남들 마냥 부모덕도 좀 보고, 일만 하고 살았더니 후회가 돼.'
주름 가득한 이마, 뺨 그리고 손. 입술은 붉은빛을 잃은 지 오래돼 보였다. 얼굴에 드리운 짙은 그늘, 그 모든 것들이 그녀의 젊은 날이 얼마나 고되었는지 말해주고 있는 듯했다.
그녀는 집 앞 텃밭에 쭈그려 앉아 고개를 떨군 채 담담하게 말하고 있었다. 말을 마치고 나서야 그녀는 얼굴을 들어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나는 그녀의 시선이 부담스러워져서 눈을 감고 의자에 몸을 뉘었다. 햇볕에 노출될 일이 적은 탓에 내 손과 얼굴에서 주름을 찾기는 쉽지 않다. 얼굴 빛 역시 어두워지려면 좀 더 많은 시간이 흘려야 할 것임을 나는 믿는다. 텔레비전 속 그녀와 나의 시간은 동떨어진 듯했다.
나는 텔레비전을 끈 후 영어 교제와 연필 한 자루를 찾아 땅바닥에 던진 후 방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렸다. 한기가 느껴져 보일러를 켰다. 방바닥은 이내 따뜻해졌고 온몸에 따스한 기운이 스며들었다. 그리고서 영어 팟캐스트 앱을 켜서 오늘 올라온 부분을 틀었다.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외국인의 발음을 따라 하려 했으나 쉽지 않다.
취직을 한 후 회사에 적응하느라 여유를 갖지 못했다. 퇴근 후 집 근처 중국집에서 짜디짠 짬뽕을 한 그릇을 국물까지 비우는 것으로 하루를 마감했다. 나에게 삶은 소박한 월급과 짜디짠 짬뽕 한그릇 이었다.
우리에게는 기억할 만한 날들이 존재한다. 누군가의 생일이나 기념일 혹은 남들이 모르는 우리만의 날, 우리는 그런 날을 기억한다. 크리스마스, 부처님 오신 날, 어린이날, 독립기념일 심지어 누군가는 한우의 날, 짜장면 데이와 같은 날들까지도 기념하곤 한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나는 기념일을 기념하는 방법을 잊어버렸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나는 집 근처에 위치한 김밥가게에서 기본 김밥보다 천 원이나 비싼 소시지 김밥 두 줄을 샀다. 소시지 김밥 두 줄을 먹는 데 채 5분이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그날을 먹어버렸다.
어두운 방 안에서 나는 한참을 뒤척였다. 내 달력에는 기억할만한 사건이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은 불안감이 나를 엄습했다. 나는 불을 켜고 책상에 앉았다. 좋아하는 것들을 써본다면 기억할 만한 날이 떠오르지 없을까 하는 생각에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적어보려 했다. 하지만 무엇 하나 뚜렷하게 적을 만한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좋아하는 것보다 내가 할 수 있을 법한 일들을 적어보기로 했다.
그날 나는 영어 팟캐스트를 앱을 설치하고 관련 영어 교제 한권을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내 삶에 딱히 영어가 필요하지는 않다. 다만 막연히 떠오른 것 중의 하나가 영어였을 뿐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방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영어 앱을 듣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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