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직할 만한 책

연어/연어이야기(안도현, 문학동네)

Minsung Kyung 2021. 1. 16. 03:31

“특히 일부 젊은 시인들의 시는 지나치게 자폐적이고 난해해서 시인이나 비평가들조차도 읽기 힘들어합니다……(중략) 나 자신을 강조하고 나 자신에 관심을 갖게 되는 성향이 더 강해지고 있지 않습니까. 젊은 세대들의 시 쓰기도 다르지 않다는 것이죠. 자기 안에서 자기 세계만 들여다보니까.” (전북일보 7.30)

 

연어’와 ‘연어이야기’의 저자 안도현은 은빛연어와 눈맑은연어를 통해 희망과 사랑은 자신 속으로 침전하는 자폐적 세계가 아닌 너를 향해 나아가는 열린 세계 속에서 자라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알을 낳기 위해 사는 것은 먹기 위해 사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분명히 삶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연어, p. 52) '우리가 사는 물속도 벽이나 다름없어. 그곳을 벗어나고 싶어. 새가 되면 물속을 벗어날 수 있어. 그 길밖에 없어.'(연어 이야기, p. 24) 우리는 삶이란 특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은빛연어 역시 평범한  연어의 길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심지어 새가 되고 싶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강으로 바다로의 험난한 여정 속에서 그들은 깨닫는다. 연어의 길 즉, 나의 길이야 말로 희망이 놓여있는 곳이었음을. 폭포를 거슬러 올라와 알을 낳는 순간, 피비린내를 거치며 바닷물을 들이켰을 때의 순간, 그곳에 삶이, 희망이 있는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인문학자들이 다소 직선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시인은 은빛연어의 삶을 통해 잔잔하게 드러내고 있다. '연어들에게는 연어의 길이 있다고 생각해.'(연어 p. 104) '지금부터 우리는 두 개의 눈을 가진 연어가 아니야. 5,000마리가 각각 두 개의 눈을 가지고 있으니까. 우리는 만 개의 눈으로 물속을 살피는 연어가 된 거야. 이런 물고기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어. 우리는 작지만 거대한 물고기야.'(연어 이야기 p. 108)
강으로 바다로의 여정에서 연어들은 무리를 이룬다. 그들은 폭포를 거슬러 오르는 지혜를 모으고 포식자에 공동으로 대처한다. 그리고 마침내 폭포는 길을 열었고 바다는 가슴을 열열어젖혔다 시인은 보여주고 있다. 내가 아닌 우리가 되는 것이야말로 우리를 새로운 세계로, 너 넓은 삶으로 이끌어 줄 수 있음을 말이다.

'눈맑은연어를 만난 이후의 은빛연어는 그가 알고 있던 수많은 연어들의 이름과 주소와 취미와 특기를 잊어버렸다. 그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던 모든 과거의 기억들이 사라져 그는 빈털터리가 되었다. 눈맑은연어 한 마리가 그 비어 있는 자리를 온통 채웠기 때문이다.'(연어 p. 47) '네가 내 옆에 없었기 때문에 나는 아팠다. 네가 보고 싶었다. 네가 보고 싶었기 때문에 바람이 불었다. 네가 보고 싶어서 물결이 쳤다. 네가 보고 싶어서 물속의 햇살은 차랑차랑 하였다. 네가 보고 싶어서 나는 살아가고 있었고, 네가 보고 싶어서 나는 살아갈 것이다.'(연어이야기 p. 56)

 

'조용히 해. 남이 듣잖아. 좀 조용히 얘기할래? 이러면 사랑이 끝난 거에요.'(강신주의 다상담, p. 34) 철학박사 강신주는 사랑은 나와 그 사람 단 둘을 주인공으로 만들어 준다고 말한다. 나와 상대가 아닌 주위가 의식되는 순간 사랑은 끝났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은빛연어와 눈맑은연어는 서로 사랑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의 세상은 상대로만 가득 찼기 때문이다.

 

시인의 말처럼 연어라는 말속에는 강물 냄새가 난다. 희망하고 사랑하는 이들에게서는 강물 냄새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