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days)

마음을 읽다_Day 13(일침 사회)

Minsung Kyung 2021. 1. 11. 01:20

최근 한 아이가 학대로 인해 사망한 사건이 큰 이슈가 되었다. 각종 SNS에서는 아이에 대한 추모 운동이 이어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러한 형태의 추모 방식을 부정적으로 여기지 않는다. 이슈에 편승하려는 목적을 가진 이들에 의해 의도가 훼손될지라도 어쨌든 여론을 만드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더 직접적인 행동이 수반된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나 그렇지 않다고 해서 이러한 추모 행위를 비난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사람들 대다수가 좋은 일을 하지도 나쁜 일을 하지도 않는 중간쯤 어딘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이 사건에 대한 SNS상의 추모 행태를 비판하는 글을 마주하게 되었다. 글은 직업의 특성상 아동학대를 마주할 일이 많은 사람이 쓴 것이었다. 그 혹은 그녀는 자신이 목격한 아동학대의 실태와 직접적으로 나설 수 없는 안타까움을 시작으로 현재 벌어지는 인터넷상의 추모 행태를 비판했다. 글의 말미에는 실질적인 해결책으로 법과 제도를 개선하고 세금을 이용해 아동학대를 막을 수 있는 기관을 만들어 이러한 사태를 본질적으로 막자는 것이었다. 안타까움이 느껴지는 글이었고 나 역시 본질적인 방지책은 글쓴이의 말대로 사회적 자원을 투입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나는 해당 글에서 작은 불편함을 느꼈고 그것에 대해 조금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내가 느낀 주된 불편함은 '세금'이란 단어에서 기인한다. 나는 해당 글의 마지막이 세금을 투입해서 본질적인 해결을 도모하자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우리 개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로 끝맺음을 했다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을 느꼈다. 물론 법과 제도 그리고 세금을 투입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하지만 우리가 법과 제도 그리고 세금만 언급하게 된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역설적으로 여론을 형성하는 것, 즉 SNS를 통한 추모 행위 뿐이다. 내가 법과 제도 그리고 세금을 운용하는 위치에 있지 않는 한 할 수 있는 것은 현재 벌어지는 추모 행위에 동참하는 것 뿐이다.

 

나는 이 비극적인 사건을 언급하는 이들 모두가 '좋은 일'을 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법과 제도 그리고 세금만을 언급하게 된다면 아동학대는 우리의 일이 아니라 '누군가'의 일이 되고 만다. 더 심각한 것은 비판하는 것으로 내 의무를 다했다고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모두 이 사건을 마음 아프게 여긴다. 다만 안타까움이 '비판'을 넘어 행동의 수준까지 나아간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행동은 거창한 것이 아니어야 한다. 행동은 내가 할 수 있는 수준에서 머무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출입문을 여닫으면서 혹시 아이가 뒤에 있지 않을까 다시 한번 살펴봐 주는 행동, 길에서 곤란한 상황에 있어 보이는 아이에 대한 관심 혹은 아동학대 방지 단체에 대한 작은 기부와 같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 보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SNS상에서 벌어지는 추모 행위를 긍정한다. 만약 내가 정책 입안자나 세금을 운용할 수 있는 위치라면 보다 더 근본적인 행동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세금'을 언급하는 것에는 여전히 부정적이다. 아동학대 방지에 사회적 재원을 투입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이가 있을까? 아마도 현실적인 한계로 인해 대대적으로 투입하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아동학대 방지에도 더 많은 예산이 배정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 글을 쓰면서 떠오른 책이 한 권 있었다. 책의 서문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현행의 사회질서를 원활하게 기능하도록 하고, 비판을 받아들여 이를 개선하는 것이 자기의 임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일정 수 확보할 것인가? 이것이 이 책을 통해 내가 달성하고자 하는 정치적 목표 입니다."(혼자 못 사는 것도 재주, 북뱅 P. 23)

 

'나'의 비판이 '누군가'의 행동 의지를 북돋아 줄 것이라는 믿음은 헛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