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days)

시작한다면 완성된다. (유화_미인도)

Minsung Kyung 2020. 11. 28. 21:22

모든 그림이 다 그랬지만 이 그림을 그리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 '과연 될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가채와 치마의 형태나 색감을 표현하는 방법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또한 선이 고운 여자임을 드러내는 눈썹, 코, 입술 그리고 얼굴 윤곽의 표현 또한 고민되었다.

 

그러나 앞서 말한 고민은 채 두 달이 안되어 해결되었고 결과적으로 선이 고운 가인이 나타났다. 그래서 이 시리즈의 제목이 '시작한다면 완성된다.'이다.

선이 고운 사람들은 매력적이다. 그들의 행동에도 그 고운 선 마냥 단아함이 묻어난다고 느끼는 것은 내 편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길고 고운 손가락이 드러내는 '나비' 같음에 매료되어 본적이 있다면 내가 가진 편견을 이해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단아함과는 거리가 먼 외형과 성정에 대한 반발일 수도 있을 텐데, 삶에서 '나비' 같음을 추구하려 노력했던 기간이 있었다. 이해하기 쉽게 '무소유'라 말한 적도 있지만 무소유 정신과는 전혀 관계없는 행동이었다. 장기간 쓰지 않는 것,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을 많이 내다 버렸다. 물건을 사들이는 데 상당히 많이 고민하고는 대부분 들이지 않는 것으로 결론을 내기도 했다. 혼자 살기에 이미 넓다고 생각했던 집이 넓어지다 못해 휑한 느낌마저 주었지만 대신 눈이 번잡스럽지 않으니 그것으로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넓어진 집과는 달리 내 정신은 여전히 좁고 무거웠다. 그 곳에서 단아함이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가늘고 고운 선이 드러내는 단아함. 없다. 행정복지센터에서 서류를 떼기 위한 기다림 속에서 짜증은 끓는 죽 마냥 부글댔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와중에도 번잡스러운 정신은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게 했고 느리게 가는 차를 앞에 두게 되면 단아함, '나비'와 같은 우아함이란 저 멀리 사라졌다.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내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단아함과 우아함, 그래서 내가 선이 고운 사람들을 갈망하는지도 모른다. '혹시 그들의 심장은 보통 사람보다 느리게 뛰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기도 한다.

글을 끝맺으려다 갑자기 '아니마'란 단어가 떠오른다. 혹시 내 안에 잠재된 여성성이 발현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