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days)

시작한다면 완성된다. (유화_따스한 가로수길)

Minsung Kyung 2020. 11. 7. 23:14

따뜻한 조명이 나뭇잎을 거쳐 빗물이 흥건한 바닥을 비추니 차가운 가로수 길임이 분명한데도 길에 따스함이 배어들었다. 그인지 혹은 그녀인지 모를 사람이 홀로 걷는 가로수 길이 더 없이 낭만적이다. 그냥 좋았다.

어느 날 친구와 함께 용하다고 소문난 역술인을 찾아갔었다. 그 분은 내 앞에 종이 한 장을 펼쳐놓았다. 그 종이에는 많은 한자가 쓰여 있었는데 나는 한자 다섯 개를 고르도록 요청받았다. 나는 눈(雪), 바람(風), 비(雨), 겨울(冬)을 골랐고 나머지 한 자는 기억나지 않는다. 무슨 심리인지 모르겠으나 내가 알지 못하는 글자에는 영 마음이 가지 않았기에 아는 한자 중에서 그림 같은 이미지를 가진 한자들로만 골랐었다.

 

오랜 시간이 지났기에 기억나는 것은 없지만 ‘칭찬’에 대한 것은 또렷이 기억난다. 나 같은 사람은 이성을 만나게 되면 칭찬을 자주 해야 한다고. 그분은 나에게 칭찬을 자주 할 것을 조언해주었다. 그 연유에 대해서는 딱히 기억나지 않는다.

 

한번은 그다지 친하지 않은 회사 동료와 퇴근길을 함께 한 적이 있었다. 의도된 것은 아니고 회사에서 같은 시간에 나오다 보니 지하철역까지 함께 걷게 된 것이다. 가는 길에 호떡을 파는 노점이 눈에 띄었다. 나는 호떡을 하나 사서는 입에 물고 그 동료와 함께 지하철역까지 계속 걸었다. 지하철역에 도착하자 그녀가 의아한 듯이 나를 바라보고는 말했다. 자신에게 하나 먹겠냐고 물어보지 않고 내 것만 산 것이 이상하다고. 변명을 하자면 나는 그녀가 기름진 호떡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 지레짐작해서 그녀에게 권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후 내 친동생은 나에게 ‘호떡남’ 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당시 나는 내가 무엇을 잘 못 했는지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몇 년이 지나고 나서야 그 당시를 떠올리고는 관계에 대한 나의 생각이나 행동에 배려가 결여되어 있었음을 알았다. 두루두루 함께하는 삶을 유지하려면 타인에 대한 배려를 갖춰야만 한다. 그것이 형식적인 것으로 느껴진다 할지라도 말이다. 다수에게는 그것은 형식이 아닌 보편적인 것이고 보편성은 존중 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 사회를 유지하려면 더더욱 그렇다.

어떤 그림을 보았을 때 마음이 반응하는 경우가 있다. 명확하게 설명할 순 없지만 그냥 좋다. 좋아하는 이유를 설명해 보려 하지만 마음을 언어로 설명할 길이 없어 ‘그냥 좋다.’라는 말하게 된다.

 

이 그림을 봤을 때도 그랬다. 그냥 좋았다. 그래서 그려보고 싶었고 약 한 달 반 정도의 시기에 걸쳐 완성할 수 있었다. 대다수의 시간은 기름이 날아가기를 기다리며 보냈는데 급한 성미 탓에 열로 말리면 기름이 빨리 날아가지 않을까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실행해 옮기지는 않았다. 만약 그런 일을 벌였다면 그림 안에 시간이 쌓이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대상에 켜켜이 쌓여있는 시간을 보게 되면 그 대상은 더욱 아름다워진다.